익산향토문화 제3호 발간
- 작성자
- ik1102
- 작성일
- 05.01.12
- 조회수
- 85
익산교원향토문화연구회(회장 이택회, 남성고등학교 교사)에서 발간한 '익산향토문화 제3호’출판기념회가 11일 오후 6시 우아성(익산국토관리청 앞 네거리)에서 열린다.
이번 호는 4·6배판 366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되었는데, 7편의 논문과 11편의 정기 답사기, 그리고 기행문과 수상 등 27편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이번 호에는 일본 큐슈 오이타 현 마나노장자전설연구회 김찬회 교수의 오이타 현 마나노장자전설과 서동(무왕)설화’라는 논문이 실려 한일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한 익산교원향토문화연구회는 익산 시내 초중고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1998년에 창립한 향토문화연구 단체로 현재 54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연구회는 달마다 첫째 주 토요일에 정기답사를 실시하고, 방학 기간에는 다른 지역의 문화재까지 답사하는데 현재까지 총 69차의 답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답사한 답사기와 평소에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묶어 편찬하고 있다. 논문 외에도 11편의 정기 답사기와 기행문 및 수상 8편, 2004년에 보도된 익산의 역사, 문화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실어 역사 자료가 되게 하였다.
수록 논문 :
① 단군신화와 익산(남성고등학교 이택회)
단군신화에서 ‘쑥과 마늘’은 ‘쑥과 달래’로 해석해야 하며, 쑥과 달래는 호랑이를 믿는 집단은 수용하기 어려운 정치적 요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사달’ 또는 ‘궁홀산’으로 부른 곳은 황해도 ‘구월산’이며, ‘금미달’, ‘궁홀산’으로 부른 곳은 ‘곰으로 표상되던 집단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 194년에 구월산에 있던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으로 내려왔으니, 2006년은 익산에 도읍을 정한 2200년이 되는 해이며, 익산은 고조선→ 건마국→ 마한 → 백제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지역으로 지역민들은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② 백제 우물 유적에 대한 고찰(익산시청 문화관광과 이신효)
지금까지 백제지역에서 확인된 11개 유적 15개 우물을 대상으로 우물의 입지와 우물의 제작, 우물의 구조와 분류, 출토 유물에 대해서 알아본 논문이다.
우물은 저습지, 강변, 계곡, 구릉 등에 위치하며, 깊이는 2미터 내외가 대부분이다. 우물은 목재, 석재, 토기 등으로 쌓았는데, 목조 → 석조 → 토기조로 변화하고 있다. 우물의 형태는, 평면 형태는 방형 → 팔각(다각) → 원형으로 변화하고, 단면 형태는 역제형 → 장방형 → 장타원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물은 대부분 6~7세기대의 유적이다.
③ 왕궁리 유적(왕궁리유적발굴조사단 전창기)
왕궁리 유적의 발굴 조사 현황을 상세히 정리하고, 관세음응험기에 대한 해설, 기와로 본 왕궁리 유적에 대해 쓴 논문이다.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발굴 조사한 이래, 궁장(宮牆)과 궁장 내에 위치한 각종 건물지, 석축, 와요지 등을 발굴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은 백제 말경인 7세기 전반을 상한하고, 가장 늦은 시기의 유적과 유물은 9세기 경까지 나타난다. 935년에 통일신라가 멸망하므로 이 시기 전후까지 검토할 여지가 있으나, 고려시대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는다.
④ 봉수 제도와 통일기원 봉화제(이리동초등학교 이종범)
봉수의 의의, 봉수의 유래, 봉수의 종류, 봉수의 방법, 봉수 노선, 봉수의 시간, 봉수의 체제와 운영, 봉수대의 시설, 봉수의 폐지 들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이어서 2004년 10월에 실시한 ‘전국 통일기원 봉화제’ 때 소방산 봉수대장으로 체험한 것에 대해 썼다. 곧, 이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익산에는 봉수대가 어디에 있었으며, 당시에 썼던 축문은 어떠했는가에 대해 소개하였다.
⑤ 법과 역사의 만남―조선시대와 오늘의 형벌제도-(남성고등학교 이용환)
조선시대의 형벌 제도인 태형(笞刑), 장형(杖刑), 도형(徒刑), 유형(流刑), 사형(死刑), 속전(贖錢), 부가형(附加刑), 법외(法外)의 예에 대해 먼저 논하고, 이어서 오늘날의 형벌 제도인 사형(死刑), 자유형(自由刑), 재산형(財産刑), 명예형에 대해 논하였다. 이로써 형벌 제도는 조선시대나 오늘날이나,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그들이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보듬어 안는 사회적 제도로 발전해 왔다고 하였다. 또 앞으로도 범죄자가 사회에 복귀하여 원활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형벌 제도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하였다.
⑥ 최명희의 태안충절록과 전우의 소감문(동학농민혁명기념관 최옥환)
간재 전우(1841~1922)가 추담별집(秋潭別集)에 실려 있는 최명희의 ‘태안충절록(泰安忠節錄)’을 읽고 쓴 소감문을 소개한 글이다. 간재를 비롯한 당시 유생들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을 반역으로 보았고, 이에 맞서다 죽은 관리는 충절을 다했으며, 남편을 따라서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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